
혹시 이런 경험 있으신가요? 어릴 때 봤던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불현듯 떠오르는 것. 토토로가 빗속에서 우산을 들고 버스 정류장에 서 있던 모습이라든가, 치히로가 안개 자욱한 터널을 통과하던 그 순간이라든가. 분명 '그냥 애니메이션'이었는데, 왜 그것이 삶의 어느 틈새에서 다시 기어 나와 마음을 뭉클하게 만드는 걸까요.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의 작품은 그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잘 만든 영화라는 말로는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는, 보는 사람의 내면 깊숙이 뿌리를 내려버리는 그 무엇이 있어요. 오늘은 그 '그 무엇'이 정확히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그동안 미처 몰랐던 지브리의 뒷이야기들을 하나씩 꺼내보려 합니다.

1941년 도쿄에서 태어난 미야자키 하야오는 어린 시절부터 비행기와 자연을 사랑했습니다. 아버지가 군용기 부품을 만드는 공장을 운영했고, 그 영향인지 그의 작품 속에는 늘 하늘을 나는 존재들이 등장하지요. 나우시카의 메베, 하울의 성, 붉은 돼지의 포르코 로소, 바람이 분다의 비행기까지. 단순한 로망이 아니라 일생을 관통하는 집착에 가까웠어요.

그런데 많은 분들이 잘 모르시는 사실이 하나 있는데, 스튜디오 지브리라는 이름 자체가 사하라 사막 위를 부는 열풍 '지브리(Ghibli)'에서 따왔다는 겁니다. '애니메이션 업계에 선풍을 일으키자'는 의지를 이름 속에 담아 1985년 6월에 설립한 것이지요. 그리고 그 열풍은 예언처럼 현실이 됐습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은 애니메이션으로서는 최초로 베를린 영화제 금곰상을 수상했고, 일본에서만 2,4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당시 일본 영화 사상 최고 흥행 기록을 세웠어요. 이 기록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는, 그해 전 세계에서 가장 흥행한 영화들과 나란히 놓아봐도 전혀 밀리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미야자키의 작품이 전 세대를 아우르며 사랑받는 이유는 단지 화려한 배경 미술이나 감동적인 음악 때문만이 아니에요. 그 안에 담긴 주제 의식이 놀랍도록 진지하고 묵직하기 때문입니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와 《모노노케 히메》(1997)는 인간과 자연의 공존이라는 주제를 날카롭게 파고들었고, 《센과 치히로》는 탐욕에 빠진 어른들의 세계 속에서 아이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치히로의 부모가 돼지로 변한 것은 단순한 마법이 아니라, 먹을 것과 돈에만 집착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에요.

그래서 어릴 때 봤을 때는 그냥 신기한 이야기였는데, 어른이 되어 다시 보면 전혀 다른 층위의 의미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지요. 동글동글하고 해맑은 그림체의 이면에 현실적인 문제의식과 철학적 사색의 깊이가 숨어 있다는 것 — 이것이 지브리 작품이 시간이 지나도 낡지 않는 진짜 이유입니다.

이쯤에서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실 뒷이야기들을 좀 꺼내볼게요. 먼저, 미야자키 하야오는 극단적인 완벽주의자로 유명합니다. 그는 거의 모든 컷을 본인이 직접 손으로 그리는 방식으로 작업했어요. 현대 애니메이션 업계의 기준으로 보면 믿기 어려울 만큼 비효율적인 방식이지만, 그래서 그의 작품 어디를 잘라내도 '미야자키답다'는 것이 한눈에 보이는 거예요.

쿠츠나 켄이치가 "미야자키의 작품은 미야자키가 꾸는 꿈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고 말한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닌 셈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만든 마지막 작품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2023)는 무려 7년이라는 제작 기간을 거쳤어요. 더 놀라운 것은, 이 영화가 개봉 전 예고편 한 편, 홍보물 하나 없이 포스터 이미지 단 하나만으로 세상에 나왔다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전 세계적으로 약 2억 9,400만 달러(약 4,000억 원)의 수익을 올렸고,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하며 《센과 치히로》 이후 20년 만에 두 번째 오스카 트로피를 품에 안았습니다. 홍보 제로(零)로 아카데미를 제패한 것이지요.

또 하나 많은 분들이 모르시는 사실이 있어요. 미야자키 하야오는 지금까지 무려 네 차례나 은퇴를 선언했다가 번복했습니다. 처음은 1997년 《원령공주》 이후였고, 두 번째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 이후, 세 번째는 2013년 《바람이 분다》 이후였어요.

그리고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도 처음에는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졌지만, 지브리 스튜디오 부사장 니시오카 준이치는 토론토 국제영화제 레드카펫에서 "미야자키 본인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으며, 지금도 다음 애니메이션을 구상 중이다. 매일 회사에 나온다"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미야자키의 아들 미야자키 고로는 "아버지가 지금 액션 어드벤처물을 구상 중이며 향수를 불러일으킬 작품이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그러니까 '이번엔 진짜 마지막'이라는 말을 그대로 믿기보다는, 이 노장이 또 어떤 꿈을 꾸고 있을지 기대감을 품는 편이 훨씬 행복한 선택일지도 모릅니다.

2025년에는 지브리 설립 40주년을 맞아 프랑스 감독 레오 파비에가 만든 다큐멘터리 《미야자키 하야오: 자연의 영혼》이 공개됐고, 2026년 4월에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제작 과정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한국 메가박스에서 개봉되었습니다.

이 다큐는 2013년 은퇴 선언 이후 번복과 복귀, 신작 개봉에 이르기까지 3,598일을 응축한 작품으로, 2024년 칸영화제에서 먼저 공개돼 큰 주목을 받았어요. 거장의 작업실 안쪽, 연필이 종이를 긁는 소리와 함께 천천히 쌓여가는 한 편의 세계 — 그것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적잖은 감동이 밀려온다고 하더군요.

게다가 2026년 6월에는 지브리의 첫 장편이자 미야자키의 원점이라 할 수 있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의 재개봉도 예고된 상태입니다. 거장이 40여 년 전 세상에 내놓은 그 꿈을, 새로운 스크린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설레는 일이지요.

결국 우리가 미야자키 하야오를 사랑하는 이유는, 그가 단 한 번도 관객을 어르거나 달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는 어린이를 위한 영화라는 이유로 이야기를 단순하게 만들지 않았고, 상업적 성공을 위해 철학을 포기하지도 않았어요. 오히려 묻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살 것인가, 당신은 정말 살아 있는가, 당신이 진정 지키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그 질문들이 때로는 해맑은 토토로의 눈망울로, 때로는 바람 위를 나는 비행기로, 때로는 목욕탕 한켠의 고요한 밤으로 찾아와 우리 가슴을 조용히 두드립니다.

애니메이션이라는 형식이 어른의 마음을 건드리는 데 이처럼 탁월할 수 있다는 것을 세상에 증명한 사람, 미야자키 하야오. 그의 다음 꿈이 어떤 이야기로 펼쳐질지,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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